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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들의 명강의: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유방 질환/ 2004-06-30
작성자 : 운영자(kylggc@hanmail.net)  작성일 : 2017-01-30   조회수 : 158

여성에게 있어 유방이란 무엇일까? 사랑하는 아기에게 사랑을 먹여주고, 사랑하는 남편에겐 사랑을 갈구하는, 모성과 여성성의 상징이라고 말하면 평균점은 받을 성 싶다. 십육세 봉긋한 앞가슴은 수줍은 연정이고, 이십육세 아찔한 젖가슴은 숨막히는 열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성인 필자가 아무리 애를 써서 유방을 수사(修辭)하려 하여도, 여성이 그것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애착하는지는 표현하지 못할 것 같다. 여자의 마음은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다고 했는데, 유방과 유방에 대한 의미도 그렇게 미묘하게 변하는 것 같다. 유치한 말 장난 대신 차라리 ‘여성의 상징’이란 아주 투박한 표현이 그래서 더 적확한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여성의 젖가슴 만큼 따듯하고 부드럽고 섹시한 게 세상에 또 있을까? 그러나 탐욕스런 암 세포는 그곳에도 어김없이 파고 든다. 미국에선 여성 8명 중 1명이 유방암에 걸리며, 국내서도 2001년부터 유방암(16.1%)이 위암(15.3%)을 제치고 여성 1위암이 됐다. 한국유방암학회의 통계에 따르면 2003년 말 현재, 40대 여성 10만명 중 68명, 50대 여성 10만명 중 58명이 유방암에 걸리며, 그 중 60%가 유방을 완전 절제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수백명의 여인네들이 여성성이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유방암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 수록, 미혼이거나 출산경험이 없을 수록, 초산이 늦을 수록, 아기에게 모유 대신 분유를 먹일 수록, 초경 연령이 빠르거나 폐경이 늦을 수록, 유방암 가족력이 있을 수록 발병 빈도가 높다. 또 육식위주 식생활 등 생활습관의 서구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의 최근 경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출산경험이 없는 사람이나 폐경이 늦은 사람 등에게 유방암이 빈발하는 이유는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때문이다. 임신기간엔 월경을 하지 않으므로, 폐경이 빠르면 월경이 그만큼 빨리 끊어지므로, 분비되는 에스트로겐의 총량도 적어진다. 그러나 반대인 경우엔 에스트로겐에 노출되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지게 된다. 에스트로겐은 유방 유관 세포의 증식-분화를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성을 여성답게 만드는 에스트로겐이 도리어 여성성의 상징을 파괴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최근엔 폐경 증상 치료를 위해 에스트로겐을 투여하는 ‘호르몬 대체요법’이 유방암 발생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유방암 자가진단 모습./ 조선일보DB

유전적 요인도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정확한 국내 통계는 없지만, 서구의 경우 전체 유방암 환자의 5~10% 정도는 가족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BRCA란 유전자가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엔 70~80%가 유방암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직계가족 중 2명 이상 유방암 환자가 있는 경우엔 반드시 BRCA 유전자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그 밖에 육류 위주의 식생활, 비만, 운동부족, 과도한 음주, 흡연 등도 유방암 발병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육류섭취, 운동부족, 비만 등이 관계가 있는 이유는 지방조직은 에스트로겐 수치를 올라가게 하기 때문이다. 빼빼 마른 사람보다 약간 통통한 여성에게 유방암이 더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엔 잦은 밤샘 근무, 전자파 노출, 커피 등이 유방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해외의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아직 논란이 있는 상태다.

그러나 유방암이 증가하는 진짜 이유는 진단기술의 발달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유방암 발병률은 거의 비슷하거나, 약간 증가했을 뿐인데 진단기술이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과거 같으면 놓쳤을 초기 유방암 환자들을 대거 발견하게 됐고, 그 때문에 유방암 발병률이 급증한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들은 그렇게 해서 발견된 환자 중 일부는 암이 더 이상 자라지 않거나, 자라더라도 생명에 위협을 주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편이 좋은데, ‘괜히’ 발견되는 바람에 불필요하게 유방을 절제하는 등의 치료를 받게 되고, 막대한 정신적 충격과 금전적 손실까지 초래하게 된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 지역 암등록 사업단’이 1993~1997년 암 환자 9만3000여명을 추적조사한 결과, 서울 강남구는 유방암 발병률이 인구 10만명당 26.4명으로 14.0명인 금천구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았다. 그러나 유방암 사망자 수는 오히려 금천구보다 적었다. 이 정도면 ‘유방암 검진 무용론’이 제기될 만도 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미국 ‘타임’지가 커버 스토리로 다룰 정도로 유방암 환자가 많은 미국에선 심각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통계청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유방암 사망자는 1990년 584명, 1995년 921명, 2000년 1173명, 2002년 1371명으로, 10년전에 비해 두배 이상 증가했다. 유방암 진단-치료기술의 발달로 유방암 사망률은 과거보다 크게 낮아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사망자가 급증한 이유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유방암이 급증한 이유를 ‘불필요한 유방암 검진의 확산’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활방식의 변화 등에 따라 과거보다 실제로 유방암이 급증한 것이다.

따라서 정기적인 유방암 검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첫째는 생명을 잃지 않기 위해서며, 둘째는 꽃같이 예쁜 유방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어떻게 보면 두번째 이유가 더 중요하다.

사실 유방암은 정기검진 여부와 상관없이 비교적 빨리 발견되기 때문에 완치율(5년 생존율)이 무척 높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0대 암 중 유방암의 5년 생존율은 77.5%로, 갑상선암(93.3%)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3기말이나 4기에 발견되면 5년 생존율이 5~20%에 불과하지만, 4기에 발견된 유방암은 전체 유방암의 2.1%에 불과하다. 위암이나 간암 등과 달리 유방암은 촉진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진단이 가능하고, 증상이 비교적 뚜렷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기 검진을 받지 않아도 운이 좋으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댓가로 유방을 내어줘야 한다. 한국유방암학회의 통계에 따르면 전체 유방암 환자의 60%가 유방과 겨드랑이 림프절을 완전 절제했고, 3%는 림프절 절제 없이 유방만 잘라냈다. 유방을 보존하는 수술을 받은 환자는 35%에 불과했다. 1996년 유방보존수술 비율이 18.7%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60~70%에 육박하는 서구에 비해선 아직도 낮은 편이다. 정기검진의 필요성이 아직도 더 강조돼야 할 이유다.

그렇다면 어떤 검진을 언제부터 받아야 할까. 흔히 맘모그램이라 부르는 유방 X선 촬영이나 유방초음파 등의 검사는 일반적으로 40세 이후 1~3년에 한번 꼴로 받는 게 좋다. 유방암 가족력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40세 이전엔 촉진만 충실히 해도 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유방 조직이 ‘팽팽한’ 20대 30대에 유방촬영을 하면 방사선이 치밀한 유방조직을 투과하지 못해 마치 암처럼 하얗게 보여 ‘치밀(緻密)유방’ 진단이 내려지며, 이 경우엔 다시 초음파 검사를 받아야 하므로 공연히 걱정만 하고 돈만 낭비하게 된다. 동양인의 유방은 30세 초반까지는 대부분 치밀하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받지 않는 게 좋다. 꼭 받아야 한다면 유방 초음파 검사가 더 적당하다.

한편 촉진은 생리가 끝나고 2~3일쯤 후에 하는 게 좋다. 촉진할 때는 유방에 손을 대고 살짝 누르면서 손 끝의 감각으로 이상한 조직을 찾아내야 한다. 촉진을 하라면 손아귀에 힘을 주고 유방을 주므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렇게 해선 암을 찾아내지 못한다. 유방에 비누칠을 해서 매끄럽게 만든 뒤 부드럽게 어루만져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개의 경우 유방암은 크기가 1cm 이상인 경우 손으로 감지할 수 있는데, 초기암의 크기는 약 2cm 정도이므로 촉진만 제대로 해도 웬만한 유방암은 초기에 잡아 낼 수 있다.

유방암의 증상은 아프지는 않지만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혹이 만져지거나, 유두에서 피같은 분비물이 나오거나, 유두나 주변 피부가 함몰되거나, 유두 주위에 습진이 생기거나, 겨드랑이에서 임파선이 만져지는 것 등이다. 그러나 유방에서 매끄러운 혹이 만져지거나, 맑은 분비물이 나오거나, 유방 통증이 있는 경우엔 유방암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유방에서 멍울이 만져지는 것은 대부분 유선의 말단부 조직이 호르몬 변화에 따라 팽창해 단단해지는 것으로 생리기간 중 나타나는 정상적인 현상이다. 만약 유방에서 단단하고 굴러다니는 타원형의 덩어리가 만져지면 이것은 양성 종양인 섬유선종일 가능성이 높다. 이 때는 주기적으로 관찰하거나 수술로 제거하면 된다. 또 양쪽 유두에서 노랗거나 맑은 분비물이 나오는 것은 대부분 유선확장증이란 병이다. 설혹 유두에서 피가 나오더라도 유방암일 확률보다는 관내유두종이란 양성 종양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유방 통증을 암의 증상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통증이 있는 유방암은 전체의 5% 미만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너무 겁을 내지 말고 의사를 찾아 비정상적인 멍울이나 분비물, 통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한 진찰을 받아봐야 한다. 병원에선 유방촬영, 초음파 검사, 유방조직 검사 등을 통해 유방암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유방암의 치료법에는 외과 수술, 방사선 치료, 항암제 치료, 호르몬 치료 등이 있다. 또 수술에는 유방 전체와 림프절을 함께 잘라내는 ‘완전 절제 수술’과 암이 있는 부위만을 잘라내는 ‘유방 보존 수술’ 두 가지가 있다. 0~2기 환자이면서 유방 전체를 잘라낸 경우엔 추가 치료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보존수술을 받은 경우엔 보조적으로 평균 30회(28~32회) 정도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한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는 암이 생긴 부위만을 ‘타깃’으로 하므로 ‘국소치료’라 하는데, 0~2기 암인 경우는 이같은 국소치료만으로 대부분 치료가 끝난다.

그러나 3기 이상이거나 재발한 경우엔 국소치료 뿐 아니라 항암제 치료나 호르몬 치료 같은 ‘전신치료’도 함께 받아야 한다. 항암제 치료는 수술 후 남은 암세포를 없애기 위해 시행하는 경우와, 수술 전 암 크기를 줄이기 위해 시행하는 경우가 있다. 호르몬 치료는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암세포를 증식시키지 못하게 하는 치료로, ‘타목시펜’ 등과 같은 항호르몬제를 복용한다.

유방암 진단을 받으면 환자는 우선 유방 전체를 잘라낼 것인지, 일부만 잘라낼 것인지를 의사와 상의해 결정해야 한다. 만전을 기하기 위해선 물론 유방 전체를 ‘깨끗하게’ 잘라내는 게 좋다. 재발의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엔 병기(病期)를 불문하고 유방을 완전히 잘라냈다. 그러나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요즘은 의사 마음대로 유방을 잘라 냈다간 큰 일 난다. 유방보존수술의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유방보존수술의 완치율이 완전 절제수술 못지 않게 향상된데다, 유방을 잃는데 따른 환자의 정신적 충격도 그 만큼 중요한 변수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방암 환자의 70% 이상이 2기 이전에 발견되며, 그들 중 상당수는 유방보존수술만으로도 완치 가능성이 높으므로 섣불리 완전절제수술을 결정해선 안된다. 물론 3기 이상인 경우 어쩔 수 없이 완전절제수술을 받아야 하며, 초기 암이라도 암의 크기나 암이 생긴 위치, 유방의 사이즈 등에 따라 유방보존수술이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유방보존수술을 결정했다면 불안해 하지 말고 따르는 게 좋다.

아직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탓인지, 우리나라엔 의사가 유방을 남겨 두자는 데도 환자 또는 환자 남편이 도리어 유방을 완전히 잘라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첫번째는 재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의사가 충분한 의학적 근거를 갖고 유방보존수술을 권고하는데도 “그까짓 가슴 하나 없어져도 괜찮으니 확실하게 하기 위해 깨끗하게 잘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둘째는 치료 기간과 비용 때문이다. 유방보존수술을 받고 나면 약 6주간에 걸쳐 30회 정도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 환자는 매주 월~금요일 병원으로 출퇴근 해야 한다. 당연히 치료 비용도 근치적 절제술보다 몇배나 많이 든다. 넉넉치 못한 환자들은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말에 “그렇다면 잘라달라”고 말하게 된다.

꼭 그렇진 않지만 “완전히 잘라달라”는 요구는 환자 당사자보다 남편들이 더 강하게 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편들은 대부분 망설이는 아내에게 “가슴 없어도 내가 데리고 살테니 걱정말라”며 토닥거린다. 병들어 병원 신세를 지는 것을 자신의 잘못인 것 처럼 미안하게 생각하는 아내는 유방을 보존하고 싶어도 드러내지 못하고 대부분 남편의 주장에 수동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우리나라 유방보존수술 비율이 서구보다 크게 낮은 이유가 이처럼 낮은 여성의 지위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방을 잃은 여성들은 수술 후 심각한 정신적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수술 당시에야 “살고 보자”는 생각에서 얼떨결에 완전절제수술을 택하지만, 막상 수술에서 회복되면 뭉툭 잘려나간 자신의 가슴이 그렇게 흉해 보일 수 없다. 가족들 앞에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깊이 좌절하게 되며 점점 소극적이고, 대인기피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 결과 부부관계를 중단하거나, 대중 목욕탕에 가지 않게 되거나, 사람 만나는 것을 기피하게 되거나, 우울증에 걸리는 환자가 부지기수로 많다. 때로는 남편이나 자녀 등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기도 한다. 특히 남편이 주도적으로 완전절제수술을 주장한 경우엔 남편에 대한 원망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아내의 충격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남편 뿐이다. 완전 절제 수술을 받고 나면 불편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옷을 입어도 맵시가 나지 않고, 손을 올리거나 하면 브래지어가 훌러덩 걷혀 올라가기도 한다. 또 양쪽 가슴의 무게가 맞지 않아 목 부위의 통증이 유발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보다 환자들은 자신이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상실했다는 데 더 깊이 절망한다. 그리고 자신이 ‘아직도’ 여자이고 싶은 이유는 남편의 존재 때문이다. 따라서 남편은 수술 후 환자의 히스테리나 우울증 등을 보다 세심하고 자상하게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껴안아줘야 한다. 수술 후의 여러가지 이상 행동은 자신을 좀 더 아끼고 사랑해 달라는 무언의 요구라는 사실을 남편은 잊지 말아야 한다.

<양정현 교수는>

삼성서울병원 일반외과 양정현 교수의 약간 네모진 얼굴은 항상 부드러운 미소에 쌓여 있다. 어떻게 보면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도 찾아볼 수 있다.

양정현 교수

아무리 애를 써도 메스를 든 ‘비정한 외과의사’ 모습을 그에게서 찾기 어렵다. 말투와 목소리도 내과의사처럼 조용하다. 수술실서 어떻게 눈을 부릅뜨고 레지던트에게 호통을 칠지 잘 상상이 안간다.

그의 수필집 ‘유방과 사랑에 빠진 남자’ 에는 실제로 수술실서 레지던트에게 불호령을 내린 이야기가 실려있다. 수술하기 좋게 겸자(집게)로 수술 부위를 벌리고 있어야 할 레지던트가 수술중 꾸벅꾸벅 졸고 있었기 때문. 그러나 이 글의 후반부는 일반인이 들으면 깜짝 놀랄 일이겠지만 겸자를 잡고 있는 조수가 졸아도 수술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오죽 피곤했으면 수술 중 졸았겠느냐는 ‘레지던트를 위한 변명’으로 마무리 돼 있다. 그 때 그 수술방, 레지던트에게 불호령을 내린 양 교수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어느정도 짐작이 간다.

2004년 현재, 삼성서울병원 부원장을 맡고 있는 양 교수는 1973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병원서 인턴·레지던트를 수련하고 일반외과 전문의가 됐다. 국립의료원에 12년간 재직한 뒤 삼성서울병원 창립과 함께 자리를 옮겼으며, 미국의 가장 오래된 암 연구소인 로스웰팍연구소(Roswell Park Memorial Institute)와 스웨덴 노벨상 심사기관인 카롤린스카연구소(Karolinska Institute) 부속 덴더드(Danderd) 병원에서 유방암 연수를 받았다.

양 교수는 가능한 유방을 보존하고, 적게 째서 수술하는 ‘미세 침습적 기법’을 유방암 수술에 제일 먼저 도입했으며, 특히 ‘감시 림프절 생검법’의 확산에 노력하고 있다. 이는 암 세포가 제일 먼저 옮겨가는 림프절을 검사해 그곳에 암 세포가 전이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 림프절을 절제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방법이다. “림프절을 아예 다 떼버리는 게 안전한데 왜 그런 모험을 하냐”고 묻자 “환자 입장이 돼 봐라. 그런 얘길 할 수 있는지”라고 양 교수는 되물었다.

양 교수는 글을 참 잘 쓴다. 오래전 김영사에서 발간한 번역서 ‘인턴 X’는 베스트 셀러가 됐으며, ‘옷 갈아입는 의사’ ‘유방과 사랑에 빠진 남자’ 등의 수필집에서도 글 솜씨를 자랑하고 있다. 그의 글은 미문(美文)이 아니다. 그런데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 속에 환자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사랑, 넉넉한 인품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한 시인은 ‘의학적 경륜과 인격이 향기롭게 배어났다’고, 한 동료 의료인은 ‘환자와 웃고 고뇌하며 함께 인술을 펼치는 외과의사로서의 진솔한 고백’이라고 ‘유방과 사랑에 빠진 남자’를 서평(書評)했다.

<소박스:유방의 양성 질환>

유방에 혹이 만져지면 대부분 유방암을 걱정하지만 유방에서 떼어 낸 혹 4개 중 3개는 암이 아닌 양성 종양이다. 그 중 가장 흔한 게 섬유선종, 섬유낭종성 질환, 유방염 3가지다.

섬유선종은 전체 유방 종양의 7~13%를 차지하며, 특히 젊은 여성에게 많다. 20세 이하 여성에게서 발견되는 종양의 60% 정도가 섬유선종이다. 보통 2~3Cm까지 커지면 더 이상 커지지 않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때 경계가 명확하고 고무같은 느낌이 든다. 임신 및 수유기에 커지며 수유를 중단하면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양성 종양이므로 절제하지 말고 내버려 둬도 괜찮다는 주장도 있으나 암을 섬유선종으로 잘못 진단했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종양이 있으면 절제해서 조직검사를 받는 게 가장 안전하다.

섬유낭종성 질환은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양성 종양으로 유방낭종(물혹), 유관확장증, 섬유증, 유두종 등이 여기에 속한다. 여성 호르몬의 주기적인 변화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굳이 병이라 하기도 어려워 요즘엔 ‘섬유낭종성 변화’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당사자 입장에선 단단한 덩어리가 만져지고 통증도 있어 걱정을 하게 되므로 의사는 유방촬영, 유방초음파검사, 세침흡입세포검사 등을 통해 유방암이 아님을 진단해 낼 필요가 있다. 특히 유방의 유관이나 소엽이 불규칙하게 증식돼 있는 경우엔 나중에 유방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으므로 지속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유방염은 산욕기(신체 각 조직이 임신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기간)나 수유기에 아기 입 속에 있는 포도상 구균이 일으키는 염증이다. 유방 피부가 빨갛게 부풀어 오르면서 열이나고 유방에 통증이 느껴진다. 이 때 수유를 끊고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농양(염증 때문에 세포가 죽고 고름이 몰려 있는 곳)으로 발전하는데, 농양이 있으면 유방을 절개하고 고름을 빼낸 뒤 재발을 막기 위해 유관의 일부도 잘라내야 한다. 비산욕기에 생기는 유방농양은 대개 당뇨병 환자나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에게 잘 나타나며, 이 경우엔 치료가 힘들고 재발률도 높다. 유방염의 경우도 유방암과의 감별 진단을 위해 조직검사를 할 필요가 있다.

양정현 교수(삼성서울병원 일반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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