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北韓)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일컬어 반드시 ‘조국(祖國)’이라는 호칭을
쓴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과 대화할 때 ‘조국’이라는 말을 쓰면 훨씬 다정해진다.
그러나 우리 쪽에서는 무슨 대화에서든 '조국(祖國)'이라는 말이 튀어 나오면
'촌놈'취급을 받지 않으면, '덜 떨어진 인간' 취급을 받는다.
음담패설(淫談悖說)을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이나, 반어적(反語的) 의미의 "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투를 몇 번 섞어 넣어야 지성인(知性人) 취급을 받을 수
있는 반면, 무심결에라도 '조국'이니 '애국'이니 하는 용어를 쓰면 '구닥다리'나
전근대적(前近代的)인 퇴물로 매도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다 북한군(北韓軍)의 6.25남침(南侵)을 듣도 보도 못한 일부 운동권(運動圈)
에서는 그 전쟁에서 죽다가 살아난 세대가 눈을 부릅뜨고 고통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 엄연한 '남침'을 한사코 '북침(北侵)'이라고 집을 부리고 있다.
북한군 서울침공 장면
(6.25가 '북침'이면 왜 이들이 우리의 수도 태평로
까지 왔을까)
어쨌든 한반도의 남쪽에서 사라진 ‘조국(祖國)’이 그나마 북쪽 땅에서
위력(偉力)을 발휘하고 있으니 다행이랄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금의 ‘6.25의 노래’는 차라리 북한(北韓) 어린이들이
불러야 할 노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도 북한은 6.25전쟁을 ‘북침(北侵)’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6.25때 북한군에 의해 '인민의용군'으로
징집된 서울시민들
(우리가 '북침'을 했다면, 어떻게 서울시민들이
미제 'M1소총'
이 아닌 소련제 '장총' 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할까.
소련에서 우리에게 무기 지원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어쨌든 ‘6.25의 노래’는 우리나라에서 사실상(事實上) 잊혀진 노래가 되고 있다.
‘민족공조(民族共助)’라는 큰 물살 때문이다.
어느 해이던가, 국방부(國防部)가 제작한 포스터에 국군과 북한의 인민군
(人民軍)이
형제처럼 나란히 다정하게 그려져 있어서 말썽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원수(怨讐)’와 ‘적군(敵軍)’이 어느 한 순간 그림 한 장으로 ‘친구’와 ‘형제’가
되어버렸던 이 해프닝도 ‘민족공조’의 큰 그림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동안 6.25의 노래를 두고 그 가사가 초·중등(初中等)학생들이 부르기에는
너무 섬뜩하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필자가 생각해도
가사가 너무 극단적(極端的)인 용어로 구성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피를 함께 나눈 동족으로서 평화로운 이 나라를 침공하여 100만명이 넘는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저들은 '원수'일 수밖에 없었고, "쳐서 무찔러야 할"
대상임에 틀림없었다.
사정이 이러했는데도 지금 세대들은 그 노래가 대단한 오류(誤謬)라도 있는 양
비난일색(非難一色)이다. 이뿐이 아니다. 이 노래의 근원인 '6.25동란' 자체를
마치 없었던 일이거나, 우리 쪽이 뭔가를 잘못해서 일어난 사단이나 되는 것처럼
슬그머니 교과서(敎科書)에서도 지우고, 노래책에서도 지우고 있다.
털끝만큼도 본받을 일은 아니지만, 이런 경우는 일본인(日本人)과 일본정부의 근
성(根性) 이라도 닮았으면 한다. 63년전 순박하기 짝이 없는 우리나라 어버이들과
어린 여성들을 보국대(報國隊)와 정신대로 끌어다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만행을
저지른 일제(日帝) 출신 일본정부 관리들은 지금도 그때의 그것은 만행(蠻行)이
아니었다는 책을 만들어 자신들의 자식들에게 세뇌교육(洗腦敎育)을 시키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그들보다 5년이나 뒤인 1950년, 평화로운 일요일을 즐기던
우리들의 머리위에 포탄과 폭탄(爆彈)을 쏟아 부어 100만명이 넘는 무고한 우리
국민들을 살상(殺傷)한 북한공산주의자(北韓共産主義者)들의 만행과 '6.25동란'의
참상(慘狀)은 무슨 창피한 일이라도 되는 양 쉬쉬하고 감추려고만 하고 있다.
북진하는 국군
(얼어붙은 한탄강을 건넌 이들은 절반도
살아오지 못했다)
이래서는 안된다. 노래의 가사가
지금의 국민정서(國民情緖)에 맞지 않는다면, 그에 맞춰 개사(改詞)를 하면 된다.
그리고 그 개사된 '6.25노래'로 '6.25의 원혼'들을 달래줘야 한다.
가해자(加害者)의 눈치를 보느라 비굴하게 몸을 움츠리지 말고,
100만명의 원혼(?魂)들에게 제사(6.25 기념행사)라도 제대로 드려줘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와 못난 후대(後代)들이 '6.25숨기기'에 급급하고 있는 몰골이 너무나
한심하여 한 작가(作家)가 기존의 ‘6.25의 노래’를 개사(改詞)하여 ‘신 6.25
노래’라는 것을 지어 발표한바 있어 이를 소개한다.
지금의 ‘6.25 노래’가 학생들의 정서(情緖)에 맞지 않는다면, 자기가 지은
노래로라도 그 당시 희생된 원혼(?魂)을 달래주자는 취지에서 지은 시라고 한다.
新 6.25 노래
심재방
1.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조국의 산하가 두 동강나던 날을
동포의 가슴에다 총칼을 들이대어
핏물 강이 되고 주검 산이 된 날을
2.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동포 형제를 원수로 만든 그들을
겨레의 이름으로 부수고 또 부수어
선열의 흘린 피 헛되지 않게 시리
3.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자유와 민주와 평화와 번영 위해
민족의 공적과 싸우고 또 싸워서
통일의 그 날이 기어이 오게 시리
후렴
이제야 이루리 그 날의 숙원을
동포의 힘 모아 하나의 나라로
피의 원한 풀어 하나의 겨레로
이제야 이루리 한나라 한겨레
어쩌다 ‘6.25’에 대한 얘기조차 듣기 힘든 세상이 되어 개사(改詞)된
가사라도 반갑게 생각된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6.25’는 우리 민족사(民族史)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피해를 안겨준 사변(事變)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큰 피해는 인적피해(人的被害)다.
6.25 전상자
‘6.25전쟁’으로 인해 우리 국군(國軍)의 사망자는 무려 137,899명에 이르며,
실종자(失踪者) 수는 32,838명이나 된다.
부상을 당한 국군도 450,742명에 이르고 있다.
민간인(民間人)들의 사망자는 학살당한 사람까지 합쳐서 37만여 명에 이르며,
부상당한 사람도 23만여 명에 이른다는 통계다.
여기에다 피난민(避難民)이 240만여 명, 전쟁고아가 10만여 명이나 발생했다.
생떼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가 20만여 가정, 청상과부도 20여만명이나 발생했다.
부상자도 그냥 부상자가 아니다. 팔과 다리를 잃고, 악성 총상으로 신음하다가
조금 남은 논밭전지마저 모두 탕진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전쟁고아
(부모는 모두 살륙당하고 병든 개처럼 버려져 있다. 이들이
바로 우리들이다)
미국(美國)을 포함한 유엔군의 피해는
전사자가 3만6천9백여 명이고, 11만6천여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실종(失踪)되거나 포로가 된 병사들이 6,900여명에 이르고 있다.
북한군(北韓軍)과 중공군에 비하면 유엔군의 희생은 적은 규모라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은 북한군과 중공군(中共軍) 같이 남의 나라를 침략(侵略)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고, 저들의 침략을 막아 우리나라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소중(所重)한
목숨을 빼앗긴 것이다.
중공군에 생포되는 유엔군
지구 제70억번째 아기/ 2011-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