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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 박은 시골 목사/ 2015-06-27
작성자 : 운영자(kylggc@hanmail.net)  작성일 : 2015-06-27   조회수 : 182

말뚝 박은 시골 목사

따르릉... 따르르릉...
다급한 성도의 방문 요청에 맨발로 달려가 보니
기다리는 건 병든 송아지 한 마리.
안타까움에 일그러진 성도의 얼굴
얼뜰결에 송아지 머리잡고 기도 했다.
그리고 난 그 교회에 처음으로 말뚝을 박았다.

부임하고 맞이한 첫 주일
고장 난 앰프 끝내 손 못보고 고래고래 소리 내어
예배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성도들의 전화. 전화. 전화.
목사님! 온 마을에 소리가 다 나갔어요.
앗차! 외부 스피커로 온 마을에 생방송된 예배 실황

가난한 성도
가을에 추수하여 방앗간 기계에서 처음 떨어지는
알곡 한 말을 자루에 받아 어깨에 매고 교회로 달려오는데
성도의 검게 탄 얼굴 사이로 흰 이가 빤짝 거린다.
그날 내 마음엔 눈물의 강이 생겼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아침
방문 앞 헌 신문지에 쌓인 이름 모를 산나물 한 봉지
별것 아니어서 드리기 민망해 살며시 두고 간 이름
모를 성도의 정성
그 마음이 감사해 내 마음 눈물의 강에 꽃이 피었다.

겸연쩍게 내 미는 까만 비닐봉지.
그 속엔 파란 풋고추 하나 둘 셋...
중학생 아들 녀석 점심 찬으로 삼기 전에
버선발로 달려가
텃밭에서 딴 처음 열매라고 말끝을 흐리는
성도의 마음에 난 또 하나의 말뚝을 박았다.

까만 얼굴 피곤한 모습 논 일 끝내고 찾아온 예배당
그들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내 얼굴 희지 않고 검음에 감사
그리고 마음의 짐을 조금 벗었다.

부임한지 팔년 만에 학생회 사라지고
주일학교 사라지고
동네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줄어들고
예배당 빈 좌석은 점점 늘어 가는데
이 모두가 못난 목사의 책임인양
교인보기에 민망하고 주님 보기 죄스럽다.
죄인이 따로 없는 목사의 마음

아빠가 최고인양 자라난 아이
어느새 철이 들어 눈치는 빠싹 한데
애서 외면하고 어깨에 힘줘 보지만
감출 수 없는 시골교회 아빠목사의 처진 어깨는
무엇으로 감춰야 할 거나

무더운 피서 철의 예배시간
피서 길에 어쩌다 들른 도시교인
수억의 예배당에 시설은 어쩌구 저쩌구
자랑이 늘어 갈수록
내 모습은 점점 작아지고
내 얼굴 검음이 부끄러움 되어 쥐구멍을 찾는다.

오늘은 어린이가 주인공인 어린이 주일
주인 없는 시골교회 설렁함만 더하고
힘없이 내려와 인사하는데
구십을 바라보는 할머니 집사님
못난 목사 손잡으며 하는 말
“내 죽을 때 까지 가지 마세요!”
그 애뜻함 내 마음 적시고
가슴 아린 감사함에 오늘도 하루를 접는다.

내 나이 마흔 하나.
오늘로 부임한지 만 팔년이 되었다.
이직 시골교회 말뚝을 박기는 이른 나이
도회지 나가서 목회 하고픈 마음 아직 간절하고
이 궁색함 면하고픈 마음 간절한데
어느새 내 손엔 또 하나의 말뚝이 들려 있다.

쾅! 쾅!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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