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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 분노의 선택 그리고/ 2012-02-21
작성자 : 운영자(kylggc@hanmail.net)  작성일 : 2013-08-02   조회수 : 249
“남편 P씨를 목 졸라 살해한 것이 맞습니까?” 검사의 목소리가 법정을 ‘쩌렁쩌렁’ 울렸다.

수형번호 165번. 최동숙(가명·65·여)씨가 고개를 숙였다. 죄명은 살인. 의처증과 폭력에 시달리다 지난해 8월 P(당시 67)씨를 넥타이로 목 졸라 죽였다. 애처로운 표정의 한 여성이 방청석에 앉아 눈물을 머금은 채 동숙씨를 바라봤다. 딸 정란(가명·38)씨다.

정란씨는 죄수복을 입은 엄마의 모습에서 언제인지도 모르는 어릴 때의 기억이 겹쳐 보였다. 그는 “반찬이 짜다”며 밥상과 네 살배기 아이를 함께 내동댕이쳤다. 동숙씨는 쓰러진 딸을 감싸안았고, P씨는 동숙씨를 걷어찼다. 40년 가까이 매일 밤 그날의 기억은 현실에서 반복됐다. 딸이 자라 P씨를 말리기 시작하자 P씨는 모두 잠든 시간 동숙씨의 머리채를 잡고 안방으로 끌고 갔다. 동숙씨는 딸이 깰세라 ‘끅끅’ 숨이 넘어가듯 맞았다. 공포에 못 이겨 집 밖으로 나온 정란씨가 창문 아래 귀를 막고 보내는 밤만 ‘하루하루’ 쌓였다.

경찰에 신고하자는 딸에게 동숙씨는 “너희 아버지도 나중에 나이 들면 괜찮아진다”고 달랬다. 경찰이 왔을 때도 동숙씨는 “창피하다”며 서둘러 바닥에 묻은 핏자국을 지웠다. 경찰은 “집안일이니 알아서 잘하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돌아갔다. 정란씨네 가정을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디 감히!” 불호령이 내렸다. 정란씨는 13살 때쯤 할아버지에게 “엄마가 죽겠다. 이혼시켜 달라”고 했다. P씨의 친척들은 “맞을 만하니 맞았다”고 말했다. P씨가 죽은 뒤 “마누라가 말 안 들어 때린 게 별일이냐”고 반문한 사람도 있었다. P씨 집안은 모두 동숙씨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했다. 헤어지지 않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미혼인 딸에게 흠이 갈까 걱정해서 그랬다는 것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P는 유능한 방송국 엔지니어로 친절한 성격의 가장이었어요.” P씨 친구의 법정 증언이다. 친구들은 P씨가 죽을 때까지도 그의 본모습을 알지 못했다. P씨는 밖에서 친구들에게 “우리 딸, 우리 마누라”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P씨는 동숙씨를 지칠 때까지 때리다가도 멀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콧노래를 흥얼대며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곤 했다.

사건 당일에도 P씨는 흉기를 들고 동숙씨를 위협했다. 동숙씨가 울며불며 빌고 나서야 P씨는 비로소 멈췄다. 동숙씨는 생각했다. ‘잠에서 깨면 또 악몽이 계속될 거야’ 40년간 쪼그라진 삶에 지친 동숙씨의 손은 장롱 속 넥타이를 향했다. 벗어날 수 없었던 악몽이 결국 그렇게 끝났다.

동숙씨의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정란씨의 삶도 망신창이가 됐다. 수차례 자살을 기도했고, 결혼은커녕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연애조차 할 수 없었다. 정란씨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직접 그린 그림을 21일 기자에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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